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사르의 내전 (문단 편집) ==== [[마르세유|마실리아]]의 저항 ==== 갈리아 트란살피나는 지금의 남부 프랑스 지역으로 카이사르가 10년에 걸쳐 갈리아 총독으로써 다스린 지역이었다. 카이사르는 남부 갈리아를 떠난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다시 3개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에 진입하였다. 이때 마실리아(마르세유)는 폼페이우스를 지지하여 카이사르에게 대항하기로 하였다. 마실리아는 폼페이우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폼페이우스는 과거 히스파니아 원정을 수행하면서 마실리아에 야만족의 땅을 상당수 양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코르피니움에서 쫒겨난 아헤노바르부스가 마실리아에 입성하여 이들에게 과거의 은혜를 상기시키면서 카이사르에 맞서 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자신이 이끄는 3군단으로 마실리아를 포위 공격하도록 한 뒤 데키무스 브루투스에게 해군을 편성해 마실리아의 해상을 봉쇄하라고 하고 자신은 나르보(나르본) 지역에서 월동하고 있었던 또다른 3개 군단을 가이우스 파비우스에게 주어 히스파니아로 떠나도록 하였다. 히스파니아는 폼페이우스가 과거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세르토리우스]]와 5년에 걸친 전쟁을 끝냄으로써 그와 인연을 맺었고 또한 삼두정 이후 10년에 걸쳐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다스렸으므로 그의 완전한 속주가 되어있었다. 이곳엔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의 3개 군단,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의 2개 군단,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의 2개 군단, 총 7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에 8개 군단에 달하는 보조병이 참가하였다. 카이사르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앞서 파비우스의 지휘 하에 보낸 3개 군단에 3개 군단을 원군으로 합류시킨다. 그리고 자신은 잠시 갈리아에 남아서 3천 기병을 갈리아 부족들로부터 제공받아 기존의 고참 기병 3천과 합친, 즉 6천 기병을 편성한다. 기병 편성을 마치자 그는 마실리아 포위에 동원된 3개 군단을 부관인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히스파니아 군대를 지휘하러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